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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자의 말이다. 유한양행의 ‘삐콤씨’는 이런 정신을 바탕으로 탄생했답니다. 1963년 비타민B 복합제 ‘삐콤’으로 시작한 삐콤씨는 출시 후 56년간 시대에 맞게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왔답니다.
1960년대 전쟁 후 보릿고개 시절 우리나라 서민들은 제대로 된 영양을 섭취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에서 원조로 들어온 옥수수가루를 배급받아 강냉이죽으로 주린 배를 채웠답니다. 옥수수는 체내에서 분해되며 비타민B3(니아신)가 대량 소모된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강냉이 죽으로 배를 채운 서민들은 비타민B3부족으로 늘 피부병 ‘펠라그라’에 시달렸다 비타민 B1(티아민)이 결핍돼 팔, 다리에 신경염이 생겨 통증이 심하고 붓는 부종이 나타나는 각기병도 문제였답니다.
유일한 박사는 서민들을 위한 약을 만들라고 지시했답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약이 비타민B 복합제 ‘삐콤’이랍니다. 유일한 박사는 평생 나라와 국민들을 위해 살아왔다. 유일한 박사의 삶은 ▲독립운동가 ▲기업가 ▲사회사업가 등 3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유일한 박사는 1938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독립운동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답니다. 이후 1941년에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린 해외한족대회 집행부에 가담했고, 재미 독립운동가들과 활발한 애국운동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1942년에는 LA에서 재미 한인들로 무장한 맹호군 창설의 주역으로 활동했답니다. 특히, 1945년에는 버지니아주에서 12개국 대표 160명이 모이는 IPR총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해 전후 일본 처리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답니다.
기업가로서 유일한 박사는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활동했답니다. 시작은 1936년에 개인기업을 법인으로 바꾼 것이다. 이후 1962년에 제약업계 최초로 주식을 상장하며 자본과 경영을 분리했고 1969년 경영 일선에서 은퇴하면서 자식이 아닌 회사 임원에게 사장직을 물려줬습니다. 이는 전문경영인 등장의 시초가 됐답니다.
위와 같은 기업에 대한 철학은 사회에도 나타났는데 1956년부터 1970년까지 유한 사우공제회, 보건장학회, 유공관리기금,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신탁기금’을 설립했답니다.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신탁기금은 1977년 법률규정에 따라 ‘재단법인 유한재단’으로 명칭이 변경돼 현재까지 각종 공익사업을 활발하게 수행하고 있습니다.